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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위대한 인물

나이팅게일의 유년시절과 활약상

by 리니작가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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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백의의 천사 혹은 간호사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걸 아시나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이 또한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이팅게일의 유년시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나이팅게일은 왜 이름이 나이팅게일인가요?

이름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은 '등불을 든 여인'이라는 뜻이며, 1820년 영국 런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조지 나이팅게일은 유명한 외과 의사였고, 어머니 역시 교양있는 여성이었다고 해요. 부모님 모두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어머니는 딸들을 위해 많은 책을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나이팅게일은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다양한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아버지로부터는 과학과 의학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따뜻한 성품을 물려받았습니다. 두 분 모두 훌륭한 인품을 가진 분들이었고,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이팅게일은 자신감 넘치고 독립심 강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은 훗날 환자를 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적 나이팅게일은 음악교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여자아이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직업이었기에 포기해야 했죠. 대신 프랑스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크림 전쟁이 발발하자,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간 크리미아의 야전병원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군의관 존 R.하워드 로런스 대위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아 의료 활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간호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1853년 27세의 나이에 이탈리아 피렌체 육군 병원장이었던 카밀로 제노바 박사의 추천으로 영국 왕립 의과대학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후 빅토리아 여왕의 시의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간호사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간호사는 남자만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결국 설득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크림전쟁에서의 활약상은요? 당시 유럽 열강국 사이에선 크림반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이 치열했어요.

 

러시아 제국 내에서도 황제 니콜라이 1세와 차르 알렉산드르 2세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죠. 그러다보니 자연히 군대 규모도 커졌고, 전투도 격렬해졌습니다. 19세기 후반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영국군조차 고전을 면치 못할 정도였죠. 게다가 겨울이 되자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그러자 각국 정부는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십자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구호활동을 펼쳤는데, 이것이 적십자 운동의 시초였습니다.

 

영국군도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했지만, 정작 현장엔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군과의 전투에만 몰두했죠. 심지어 군인들조차도 위생 상태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질 같은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나이팅게일은 직접 전장으로 가서 병사들을 돌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주변 동료들의 만류가 심했지만,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라고 맹세하며 모든 비난을 감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후 약 8개월 동안 40여 개의 야전병원을 돌아다니며 병든 병사들을 돌보는 한편, 체계적인 간호체계를 정립하였습니다. 우선 각 병동마다 청결구역과 오염구역을 구분하였고, 병실 침대 옆에 간이침대를 설치하여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상의 시트 교환 횟수를 하루에 6번 이상으로 늘리고, 세탁물 운반용 수레를 제작했으며, 오수 처리 시설 및 목욕시설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매일 500명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적을 이루어냈죠. 이로 인해 국민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고, 마침내 귀족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로로 인한 폐결핵 발병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추모하고 있으며, 인도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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